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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용과 기수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덤덤하게 의뢰와 알아낸 것들을 나열하는 슈르트의 어조는 늘 그렇듯 그 어떠한 감정도, 사감도 없이 꼭 필요한 정보들로 들어차있었다. 불필요한 내용이 빠진 정보들 사이에서 함께 하게 된 네 명이 움직여야할 방향을 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로의 일을 떠넘기려는 이들이 결국은 다같이 몇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평야는 어둠에 잠기어 풀들이 바람에 부딪히는 스산한 소리만이 들리는 드넓은 평야였다. 은하수의 푸르스름한 빛만이 유일한 광원으로 내려앉은 평야는 하늘에서 봤을 때는 물결이 일렁이는 호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빨리 찾아내면 혹시 잘했다는 의미로 용돈 주시나요?”



  부러 하는 장난스러운 말에는 헛소리 하지 말라는 시선만이 화살마냥 꽂혔다. 하여간 다들 매정하다며 덧붙이는 말에는 한 점의 서운함도 없이 장난기만이 가득했다. 다만 주변을 살피는 눈빛 만큼은 평소와는 다르게 회색 눈동자 위로 조금 진지한 빛이 내려앉을 것을 보아서는 마냥 놀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님을 추측할 수 있었다.



 “슈르트~ 아까 데리고 도망친 용이 어떤 애랬죠?”

 

 “검은색 치룡이다.” 

 

 “여기 두 발로 걸어다닌 발자국에~ 발바닥 크기는 작은 걸 보면 이거 치룡인 것 같죠? 우리 베고니아랑 비슷하네~ 게다가…”

 

 

 둥그런 신발코가 근처의 흙더미를 툭툭 건드리면 수분을 머금은 흙이 우수수 떨어진다. 단단하게 쌓인 흙더미는 아닌지 그 이후로 이어지는 서너번의 발길질만에 흙더미가 그 속을 드러내며 무너져버렸다. 몇 번의 발길질 끝에 그 아래로 보이는 것은 바위나 흙 따위가 아닌, 불을 피운 흔적과 커다란 동물 뼈 따위였다. 반들반들한 가죽 장갑을 낀 손이 그 안을 대충 뒤적여보더니 이내 미처 타다 만 검은색 깃털 하나를 주워들었다. 



 “짠, 검은색 깃털~ 게다가 이거 불 급하게 막 끈 것 같거든요? 테네브레는 아닌 것 같아요~”

 

 “도망친 지 얼마 안 됐나보군.”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는 걸요?”

 

 “방향도 알아낼 수 있겠나?”

 

 “으음, 여러 흔적들을 봐서는… 저쪽?”



 마음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명언을 잊었던 것일까. 다가오는 이들의 존재를 깨닫고 도망친 이는 급하게 흔적을 가리려고 시도를 했으나 그 소심한 용이 갑자기 움직이자고 한들 섬세하게 몸을 놀리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처음 발견한 흔적에서부터 이어지는 발자국, 깃털, 급하게 떨어트린 물까지. 이곳에 있었던 이를 특정지을 수 있다면 그들의 행적을 추측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거의 검푸른 색으로도 보이는 자신의 앞머리를 손으로 매만지던 이안은 손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저쪽 방향에서 조금만 기다려줄래요? 저 혼자 제압까진 어려워도 몰아가는 것 정도야 가뿐하답니다~ 제가 나중에 신호를 보낼테니까 찰떡같이 알아듣고 탁 튀어올라와주세요. 믿고 있을게요?”



 대체 무슨 망상을 하면 닐스로부터 용을 데리고 달아나는 것인지. 인간이란 참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며 베고니아의 등 위로 올라탔다. 언제나 장난기가 많은 아이지만 이안이 이렇게 올라타면 놀아주겠다는 의미가 아닌 날아가야하는 때임을 베고니아도 잘 알고 있었다. 십년 가까이 함께 한 동료는 별다른 신호도 없이 이안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크게 날개를 펼쳤다. 금방 다녀올게요~ 하는 가벼운 목소리와 함께 이안이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날개 대신 오른손을 크게 흔들었다.



 “누굴 찾아야하는 지는 알죠, 베고니아? 이 검은 깃털을 가진 아이를 찾아주세요~ 빨리 찾지 못하면 제가 그 셋에게 엄청 혼날게 분명해요.. 도와줄 거죠?”



 베고니아와 함께 날아가면서 자신의 인사에 제각각의 시선을 던지던 이들을 생각하던 이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딱딱하고 포옹이라고는 하고싶지 않아하는 두 명과 장난스러운 두 명이 딱딱 갈려 모여있는 조합이 묘하게 귀엽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도형으로 따지면 네모와 세모, 원과 타원의 조합 같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확실히 지금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할 때는 아닌 것 같죠? 일단 저~ 앞의 당신~ 유바르의 이름으로 당장 멈출 것을 권고 드려요~ 제가 봐드릴 수 있을 정도의 뇌물을 주실게 아니라면 말이죠~?”



 바람 소리에 묻히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높여 외치자, 이안의 앞에서 날아가는 용 위에 앉은 이가 새파란 눈을 빛내며 뒤를 돌아 노려본다. 아이고 무서워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그 말에는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닐스 놈들! 유바르한테 의뢰를 넣어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용의 기수라는 놈들이 기어코 이 녀석을 닐스로 돌려보내겠다고?! 놈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데!!”

 

 “네에, 네에~ 그 망상 보고 자료로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바이고요~ 그쪽의 사정과 감정에는 제가 큰 관심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저랑 손 잡고 테네브레로 갈까요~ 안 그러면 엄청 무서운 제 동료들이 그쪽을 딱콩딱콩 때려버릴지도 몰라요? 후회할 거라고요?”

 

 솔직히 말을 들어먹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화살을 날리던 이안은 예상보다도 더 깔끔하게 진행되는 유인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베고니아의 목덜미를 가볍게 토닥였다. 저 용은 이미 스트레스를 받은 것인지 피곤한 것인지 움직임이 좋지 않았고, 망상에 빠진 사내의 사고력이 줄어들만큼 줄어든 상태였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 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속한 곳이 이쯤이었나 싶을 때에는 약속한 화살이 얕은 호선을 그리다 저 멀리 앞쪽으로 떨어졌다. 미리 밝게 빛나는 염료를 묻혀둔 화살, 신호였다.



“이, 이럴수가.. 유인한 거였나…!”



 힘들다고 투덜대는 것을 잊지 않은 이안은 무기를 들고 날아오른 이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여태 열심히 일을 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나머지 사람들이,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말을 듣지 않으면 가장 아프게 때려줄 아케르나르가 수고해줄 예정이었다.

 

 “하하, 그러게 제가 말했잖아요? 제 말 진작에 들으시지. 후회할 거랬잖아요~”

 

 

 아케르나르는 본디 이런 단체 활동이라면 질색했으나, 이번 의뢰만큼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용을 잃고, 과대망상증에 걸려 닐스에서 두 번째 용을 빼돌리려 하는 기수라니? 제법 흥미 있는 이야기기도 했고, 어쩐지 궁금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기도 했다. 방향성은 다를지언정 용을 잃은 기수라는 것이 이유모를 동질감과 연민을 제공하기도 했고. 그리고 거창한 사연을 다 미뤄두고 정리하자면, 무엇보다도 그가 할 일이 간단명료했다. 대충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꿀'인 의뢰였던 셈이다.

 조사와 추격은 슈르트와 이안의 몫이었고, 뒷정리는 세테르가 할 예정이었으니 아케르나르가 할 일이라곤 무식하게 힘쓰는 일뿐이었다. 아케르나르에게 있어서는 가장 자신 있는 일이었다.

 새까만 바람이 나부낀다. 여상한 밤하늘 위로는 아름다운 은하수가 반짝이고, 흐릿한 구름이 별빛을 머금고 반짝인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로 줄곧 봐온 광경에 감흥을 가질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케르나르는 당연하게도 감흥을 못느끼는 절대적 다수에 가까웠다. 그는 지루함을 채 숨기지 못하는 낯으로 사령 본부에서 대충 집어온 장봉을 어깨에 비스듬히 걸쳤다. 늘상 지니고 다니던 장창에 비한다면 여엉 형편없이 툭 하고 부러질법하게 생겼으나 상관없다. 의뢰의 목적이 살생이 아닌 추포였으므로 오히려 이 편이 나았다. 괜히 용과 사람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게 뻔하니까.

 세명의 기수들이 약속된 곳으로 용과 도망자를 몰아간다. 그보다 조금 멀찍이 거리를 벌리고 날던 아케르나르는 이안의 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난 후에야 순간적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쯧, 흩어진 지가 언젠데 한참이나 기다리게 하고 있어."

 

 의미 없는 짜증을 한마디 내뱉고서 그는 안장 위에서 몸을 일으킨다. 간단하게 궤도를 헤아리고, 익숙하게 장봉을 쥔 채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쿵, 하고 울리는 충격에 당황한 치룡이 몸을 비틀기도 전에……  아케르나르는 기수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억!"

 

 쓰러진 기수를 한 팔로 받아내고, 대신 치룡의 고삐를 쥐고서는 날갯짓을 느리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마무리될 즈음 곁으로 다가온 이안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 요란한 거 아닌가요?!"

 "아, 시꺼, 그럼 내가 뭐 얌전히 용이라도 들이받을 줄 알았냐?"

 

 말 한마디 지는 법이 없는 쪼잔한 속내의 소유자가 냉큼 맞받아쳤다.

 

 "그래도 좀 더 안전하게 묶거나 하는 법도 있었는데!"

 

 옆에서 모난 삼각형 모양새의 아군이 거들었다.

 

 "또 그런 무모한 방식을 쓰다니."

 "니들도 나더러 알아서 하라고 맡긴 거 아니었냐? 이게 제일 편한 걸 어쩌라고."

 

 여전히 씨알도 안 먹혔지만. 보란 듯이 귀를 파는 시늉을 하는 아케르나르의 꼬락서니를 보고서 슈르트는 말도 안 나오는지 혀만 짧게 찼다.

 그 즈음 느릿하게 치룡의 곁으로 날아온 자룡이 기수의 눈치를 보자, 아케르나르는 대충 성기게 손짓으로 제 뜻을 전할 뿐이었다. 제 등으로 돌아오지 않겠단 기수의 뜻을 알고 시무룩해하는 자룡을 보고 슈르트가 "너,"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세테르가 거대하고도 하얀 교룡을 이끌고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자, 일단 기수와 용은 붙잡은 것 같으니 내려가 보죠?”

 

 세테르가 넉살 좋게 상황을 정리하며 제안한다.

 

 "사람을 그렇게 기절시킨 채로 들고 가기도 뭐하잖아요."

 

 딱히 그것을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제일 비협조적인 아케르나르는 어깨를 성의 없게 으쓱였다. 달리 말은 없어도 그 표현이 수긍이라는 것을 아는 유바르의 기수들은 저마다 속으로 혀를 차거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용 다섯 마리와 사람 넷이 높은 언덕에 발을 디딘다. 거세게 불어 드는 밤바람에 흔들리는 잔디에서는 제법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꼭 용의 울음 같은 소리였다. 




 

 

검은 치룡은 낯선 용과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는 게 두려운 것처럼 작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불안하게 이곳저곳을 살피는 눈동자, 경계심에 잔뜩 힘이 들어간 귀와 꼬리. 몇 년 동안 소심함이 극에 달한 용을 돌봐왔던 세테르에게는 익숙한 반응이었다. 그러니 이 용이 기관의 연구 과정을 거치며 얼마나 심한 심리적 긴장 상태에 놓였을 지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의 용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므로.

자원한 일을 내팽개칠 만큼 강한 유감이 들지는 않았으나, 마음에 일말의 불편함이 남는 것은… 결국 그가 리테의 기수이기 때문이다. 세테르는 작은 용과 왜소한 기수를 번갈아 바라보다 슈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이 둘 수색하는 테네브레 기수들은 어디 있답니까? 위치를 알아야 인계하고 올 텐데요.”

“아발트 평야 근방. 그쪽이 테네브레의 수색구역이다.”

평시와 같은 얼굴, 딱딱하게 끊어지는 목소리가 정보를 전했다. 그 냉한 답이 불씨가 된 듯, 붙잡힌 기수에게서 노호가 터졌다.

“닐스! 그 짓밟혀 마땅한, 버러지들에게 우리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그렇게는 못 해!”

작은 체격을 가진 이에게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커다란 목소리가 광막한 평야를 울렸다. 흉터 진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닐스에서 그의 용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소상히 늘어놓으며 열변하는 기수에게서는 한 자락의 이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낯선 연구에 긴장한 용이 식사를 거른 건 부러 굶긴 것, 사람의 손이 닿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 몸을 움츠린 것은 연구원의 폭행 탓. 그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정황이 극단적으로 부풀려지고 있었다.

“다 망상인 것 같은데~ 그래도 용이 예민한 것 같긴 하네요.”

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진실로 받아들일 이는 없을 것이다. 세테르는 이안의 말에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길길이 날뛰는 기수를 잡아 누른 아케르나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꼭 잡아가야 하나? 지 멋대로 죽고 싶은 모양인데 그냥 냅두고 가든지.”

“잊었나? 체포 후 인수가 우리 임무다. 그럴 수는 없어.”

슈르트의 대꾸를 들은 세테르는 그 옆에서 “아무렴요. 그렇지요….” 중얼거리며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기수의 푸른 눈에서는 증오를 넘어 살의까지 들끓고 있는 듯했다. 이대로 이송하다가는 무언가 일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은 느낌이 세테르의 감각을 쿡쿡 찔렀다. 이런 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그는 머리를 굴리다 퍼뜩 떠오른 생각을 되는대로 내던졌다.

“그냥 용은 몰래 놔주면 안 됩니까?”

여럿의 시선이 한 데 모였다. 세테르는 검은 치룡이 있는 쪽으로 턱짓했다. 그 움직임에 용의 눈망울이 작게 흔들렸다.

“그건 우리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둘 다 테네브레에 넘겨야 해.”

“닐스로 돌아가게 되면 얘는 똑같이 힘들어할 텐데, 그걸 이분이 마냥 보고 있진 않을 것 같거든요. 얌전히 따라가 주실 것 같지도 않고. 어차피 여기로 탈주한 이유가 용의 행복 때문이니까 사람만 데려가죠? 용도 데려오라는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짧은 침묵이 자리했다. 그는 슈르트의 낯에서 수긍의 뜻을 읽었다. 가장 큰 고비를 넘자, 나머지의 동의는 순조롭게 떨어졌다.

“제정신 아닌 주인이랑 지내느니 그냥 따로 사는 게 낫지….”

“저는 의뢰를 받았으니 그에 따른 보상만 받으면 그만이에요~.”

“그럼 여긴 됐고.” 세테르는 손바닥을 짝 부딪치며 이전의 격양된 기색이 사그라든 기수를 바라봤다. 분노가 한 풀 꺾인 곳에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수척하고 위태로운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선생님. 여기 용 서식지 아닌 거 아시죠? 키리네 산맥은 다른 쪽이라고요. 좀만 더 가면 거신도 나오는데 목숨 붙어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시고! 저 애는 산맥 쪽으로 보내줄 테니 그쪽만 군도로 돌아가는 걸로 합시다. 어때요?”

기수는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만, 그 애만 보내준다면… 나는 상관없어.” 버석한 대답이 잇따랐다. 그 누가 용만을 충성스러운 생물이라 부르는가. 인간 또한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용에게 이토록 충성스러운 것을.

세테르는 아케르나르의 손에서 기수를 넘겨받아 리테의 등에 태웠다. 치룡은 제 등에 올라타지 않는 그의 기수를 바라보며 작게 날갯짓했다. 가는 바람에 풀이 흔들렸다.

“자, 너도 가자. 방향을 찾아줄게.”

치룡은 가까이 오라는 세테르의 손짓에 한참을 주저했으나, 끝내 희고 푸른 교룡의 곁으로 다가왔다. 귀엽기는. 세테르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익숙한 리테의 등에 올랐다. 가볍게 손에 닿는 곳을 토닥이자 그릉, 소리가 울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평야에 모인 동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며 하늘을 향해 이륙했다. 동류를 알아보고 마음을 놓은 듯, 나란히 비행하는 두 마리의 용에게서 초조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테르의 앞에 탄 기수는 그의 용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을 침묵했다.

검은 용이 그의 품에 머리를 부비고, 방향을 틀어 산맥을 향해 날아가는 순간까지. 작은 용이 밤하늘의 별보다 작아질 때까지.

작별인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